말글 역량(Literacy)의 본질 : 글자를 지배하는 힘
요즘 사회 곳곳에서 ‘말글 역량(문해력)’이라는 화두를 무겁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말이 처한 현실은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배움터와 언론에서 그토록 말글 역량의 위기를 외치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는 이 말의 진정한 발자취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글 역량은 단순히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글 뒤에 숨겨진 속뜻과 맥락을 파악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매섭게 가려내며, 나아가 세상을 해석하는 주체적인 지적 힘입니다.
이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언어의 뿌리와 역사를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이해력과 말글 역량, 그 체급의 차이
많은 이들이 '글이해력(독해력)'과 '말글 역량(문해력)'을 섞어 쓰곤 합니다. 그러나 두 개념 사이에는 확연한 높낮이가 있습니다.
글이해력은 글을 받아들이는 인지적 기술
글자 그대로 '읽고 이해하는 힘'입니다. 글쓴이가 펼쳐놓은 문장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고, 단락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내는 능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시험 지문을 정확하게 풀어내는 인지적 차원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글 역량은 세상을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
말글 역량은 글이해력을 품고 있는 훨씬 거대하고 입체적인 개념입니다. 글을 정확히 받아들인 후, *"이 정보는 믿을 만한가?"*라는 비판적 의문을 품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통해 나의 삶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어내는 실천적 능력까지를 아우릅니다.
즉, 글이해력이 문장의 뜻을 깨닫는 '수동적 이해'라면, 말글 역량은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능동적 실천'입니다. 글이해력이라는 탄탄한 디딤돌 없이는 말글 역량이라는 탑을 쌓을 수 없습니다.
왜 'Literacy'는 '문해력'으로 번역되었는가
이 개념이 우리말 '문해력(文解力)'이라는 한자어로 정착한 배경에는 글자마다 지닌 정교한 뜻의 어울림이 있습니다.
文 (글 월 문) : 눈앞에 주어진 글과 정보
解 (풀 해) : 얽힌 고리를 분석하고 해체하여 깨달음
力 (힘 력) : 이를 수행하는 총체적 역량
단순히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글을 '풀어내어(解)' 자신의 지식 체계로 다시 짜 맞춘다는 주체성이 이 번역에 스며있습니다.
과거 글을 읽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던 '문맹(文盲)'의 반대말로 자리 잡은 이 단어는, 이제 단순한 어문 교육의 영역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생존 능력을 보여주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어원이 증명하는 서양의 시선 : Littera에서 Literacy까지 영어권에서 'Literacy'라는 단어가 정립된 역사적 궤적 역시 매우 묵직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먼저 라틴어 Littera (글자) : 이 개념의 출발점은 직관적이게도 '글자 그 자체'를 식별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세의 Literatus (교양인) : 중세 유럽에서 이 단어는 당대 지식인들의 공용어였던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을 의미했습니다. 즉, 지식을 독점하고 사회를 이끄는 '교양과 신분'의 증표였습니다.
19세기 말의 Literacy (사회적 역량) :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고도로 복잡해지면서, 이 개념은 일부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대중이 갖추어야 할 '실용적 생존 능력'으로 진화했습니다. 형용사 Literate에 능력과 상태를 뜻하는 접미사 -acy가 붙으며 오늘날의 명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말글 역량의 실천 : 주체성을 해치는 '번역투 피동형'의 퇴출
우리가 진정으로 글을 지배하는 말글 역량을 갖추고자 한다면, 글을 읽는 태도를 넘어 우리가 쓰는 문장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쓸모없는 피동형(피동문)'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우리말은 처음에 문장 속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능동 중심의 언어입니다. 그런 말이 점점 영어에서 자주 쓰는 수동형태나 어색한 일본어 표현을 가리지 않고 쓰면서 우리 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당하는' 어색한 표현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내년에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내년에 다룹니다(혹은 다룰 것입니다)."
"그의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보여집니다."
"그의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상황에 의해 생각되어지는 바는…"
"상황을 고려해 생각하는 바는…"
'다루어지다', '보여지다', '생각되어지다'와 같은 이중 피동이나 번역투 문장들은 주어를 모호하게 흐리고 문장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주체가 사라진 문장은 읽는 사람이 깊이 생각할 기회를 빼앗고, 결국 말글을 사용하는 힘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올바른 말글 힘은 우리가 쓰는 문장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어색한 피동형을 능동형으로 바꾸어 쓰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질로의 회귀 : 스스로 걸러내며 읽고 쓰는 것
결국 말글 힘의 본질이 가리키는 방향은 동서양이 같습니다. 쏟아지는 활자의 홍수 속에서 '내가 진짜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힘'이자, 내 생각을 명확한 주체의 언어로 표현하는 힘입니다.
단순히 많은 양의 글을 기계적으로 섭취하거나, 남이 사용하는 문장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의 맥락을 잡아, 행간(Between the lines)에 보이지 않는 의도를 읽어내며, 지식을 능동적으로 '걸러내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과 행동을 책임지는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